이쁜왕자 만쉐~~

그때 그 시절. 단체 문신 사건. 본문

낙서장

그때 그 시절. 단체 문신 사건.

이쁜왕자 2020. 8. 24. 22:26

헤나 타투

전통적인 문신은 바늘로 피부에 구멍을 내고 그곳에 잉크를 집어 넣는 방법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 문신은 조폭의 표본과도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헤나를 이용한 방법도 있고, 아예 1회용 스티커로 된 것도 있어 다양한 방식으로 문신을 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노출이 심한 여름 또 하나의 매력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문신을 보면 오래전 어렸을 때 중학교 다닐 때가 생각난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하기 싫어하는 사춘기의 남학생들은 새로운 놀거리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튀어나온 것이 바로 '문신'이었다. 그 시절에 헤나 문신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고, 그렇다고 정말 바늘로 찔러 그리는 진짜 문신을 했을리도 없다.

검은 몸에 하얀 뚜껑. 컴퓨터용 수성 사인펜.

아이들에게 유행한 건 그저 '컴퓨터용 수성 사인펜'으로 그리는 문신 놀이였을 뿐이다.

제가 중학생일 땐 이 분은 활동을 안하셨음...

차카게살자
의리
사랑

주로, '차카게살자', '의리'로 대표되는 문구를 그리곤 했다.

여자 친구 생기게 해 주세요
서울대 가게 해주세요
친일파 척결

같은 자기 소망을 적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빛이 있으라.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역사속에 등장하는 멋진 명언을 적는 아이들도 있었다. 명언을 패러디하기도 하는 등, 아이들은 더 재미있는 문구를 서로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대세는 글씨에서 그림으로 넘어갔다. 하트+화살, 상처 꿰맨 자국 등 유치원 학예회에서나 볼만한 정말 애들 장난스런 그림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참 쉽죠?

그런데, 학교에는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우리 반에도 그런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손에 있는 사인펜은 마치 마법 지팡이와 마찬가지로 쓱싹쓱싹 그리면 멋진 그림을 뽑아내곤 했다. 아마추어가 판치던 세상에 전문가가 등장했으니, 세상이 초토화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야말로 군계일학이었다. 그 애가 그려주는 문신은 그날 상태에 따라 그때그때 달랐는데, 때때로 성의 없이 날림으로 그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느 날은 컬러 사인펜까지 가져와서 컬러 문신을 정성스럽게 그리는 경우도 있었다. 여하튼, 그 애가 그린 그림은 언제나 인기 만점이었다. 그래서, 너도나도 문신을 하사 받고자 줄 서서 기다리곤 하였다. 소문은 금방 퍼져 옆반 아이들도 찾아와 과자 같은 걸 조공하며, 문신을 받아가는 아이들도 생겼다.

그렇게 문신 놀이는 학교 전반으로 퍼져 나갔고, 당연히 선생님들 귀에도 들어갔다. 아이들에게 문신이 유행한다며 걱정하던 선생님들도 있었지만, 실제 문신의 정체를 본 대다수의 선생님들은 그저 애들 장난 취급하며 신경 쓰지 않았다.

...

그리고, 이 문신 이야기가 학부모에게까지 알려질 때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폭들이나 하는 문신이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더라.'
'돈 받고 문신 새겨주는 아이도 있다더라.'
'이를 알고도 묵인하는 선생님도 있다더라.'

분명히 사실이기는 한데, 살짝 핀트가 안 맞는 소문들이 학부모 사이에서 돌았고, 그 소문은 부풀리고 부풀려져 어느새 우리 학교는 조폭에게 점령당한 무법천지의 학교가 되어 있었다. 결국, 어느 열성 학부모가 정식 항의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즉시 교장/교감 선생님에게까지 전달되었다.

교장선생님은 실태 조사를 명령했고, 이에 따라 학생주임, 체육 교사, 학부모 대표로 온 떡대가 거대한 어느 아저씨 이렇게 3명이 모든 반을 돌며 문신 검사를 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학생주임과 체육 교사의 손에는 굵직한 몽둥이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학생 인권 따위는 밥 말아먹었던 그 시절, 모든 아이는 상의를 탈의한 채 검사를 기다려야 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남학교였고 여름이었다.

하지만, 3명의 조사단은 문신을 아이를 단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문신의 진실을 알고 있던 선생님들은 문신을 조사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자, 즉시 아이들에게 문신 그림을 지우라고 알려 주었고, 아이들도 빠르게 대응하여 비누칠해가며 그림을 지워 버렸다. 수성 사인펜으로 그려진 문신 따위 쉽게 지워지기 마련이었고, 혹시나 남아 있던 흔적도 침 발라서 열심히 지워 버렸다.

"학교에 문신을 한 아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라고 적인 통지서가 공식적으로 학부모에게 전달되면서 조사는 마무리되었다. 크게크게 부풀려진 소문은 언제 그런 게 있었냐는 듯 종식되어 버렸다. 그리고, 아이들도 자연스레 문신 놀이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다른 놀거리를 찾아가며, 이 단체 문신 사건은 나에게 하나의 추억거리가 되었다.

0 Comments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