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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충전기 갈라파고스가 된 한국 본문

낙서장

전기차 충전기 갈라파고스가 된 한국

이쁜왕자 2025. 12. 3. 14:01

대한민국 전기자동차용 충전 단자는 CCS1 combo 라는 규격을 사용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완속(AC)은 Type1 , 급속(DC)는 여기에 급속 단자를 추가한 CCS1 combo 라는 규격이다.

 

휴대폰이 처음 나왔을때, 휴대폰 충전단자는 제조사 별로 다 달랐다. 마찬가지로 전기차 역시 충전기 규격이 제조사 별로 다 달랐다. 전기차를 선도한 회사는 뭐니뭐니해도 테슬라(Tesla) 이고, 테슬라는 '슈퍼 차저'라는 이름의 자체적인 충전 규격도 새로 만들었다. 슈퍼 차저는 단순 충전기가 아니라, 충전기 규격, 충전단자, 전기 공급, 과금 시스템까지 아우르는 큰 시스템을 의미한다.

 

테슬라 슈퍼 차저

 

테슬라가 전기자동차로 자동차 시장에 진입하려 하자, 기존의 미국 자동차 업계인 제너럴 모터스(GM), 포드(Ford), 크라이슬러(Chrysler) 등이 이를 환영했을 리가 없다. 또한, 폭스바겐, 아우디, BMW 같은 유럽계 자동차 회사 역시 테슬라가 시장을 잠식하는 걸 바라지 않았다. 이들 기존 자동차 회사들도 나름 힘을 합쳐 '표준화된 충전 규격'을 만들려고 했다. 미국과 유럽이 각자의 사정에 따라 나뉘긴 했지만, Type1 + CCS1 combo 라는 미국식 규격과, Type2 + CCS2 combo 라는 유럽식 규격이 만들어 졌다. 일본은 AC 는 Type1 을 쓰되, DC 급속은 차데모(Chademo)라는 독자 규격을 사용하기로 결정했고, 중국은 중국 나름대로 독자 규격이 만들어 졌다.

 

다양한 충전 단자를 가지고 있는 자동차 충전기

 

한국도 전기차를 생산/판매하고,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충전 표준을 정해야 했다. 초기에는 다양한 충전 규격을 가진 전기차가 판매되었고, 또 다양한 충전 규격을 가진 충전기가 설치되었다. 표준이 빠르게 정해지지 않으면, 이는 당연히 비용 증가로 이어지는 문제이기에 빠르게 결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비교적 쉽게 결정되었다.

 

미국 표준을 따르자!
한국은 Type1 + CCS1 combo 로 결정했다.

 

사실 이 결정은 매우 합리적이었다. 미국은 세계 자동차 시장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현기차의 수출 규모를 생각하면 미국이 압도적으로 높다. 많은 경우 미국 표준은 곧 세계 표준이기도 했으니, 이 결정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2017년 12월 22일 국가기술표준원은 전기자동차 급속 충전방식을 콤보1으로 통일화하는 KS 규격을 만들었다.

 

https://eiec.kdi.re.kr/policy/materialView.do?num=172325

 

전기자동차 급속 충전방식 통일화를 위한 KS 개정 고시 | 경제정책자료 |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국가기술표준원은 전기자동차 급속 충전방식을 「콤보 1」으로 통일화하기 위하여 한국산업규격(KS) 개정을 고시하였다고 12.22.(금) 밝혔다. - 국제표준(IEC)에는 5가지 급속 충전방식을 규정하고

eiec.kdi.re.kr

 

이 날 이후 대한민국에서 판매되는 전기차는 모두 콤보1 (CCS1 combo)을 달고 출시되었다. 현대/기아차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생산되는 차량 역시 한국에서 판매하기 위해서는 이 단자를 장착하고 나왔다. 사실 외국 자동차 회사들 입장에서도 미국 규격으로 만든 차를 그대로 팔면 되니깐 딱히 문제될 건 없었다.

 

테슬라는 물론 마이웨이를 달리며 여전히 독자 규격을 사용했고, 기존 테슬라 구매자들에게는 DC 콤보 어댑터를 판매하여 문제를 회피했다.

 

여튼 표준이 확정된 한국은 보조금을 마구 풀며 CCS1 combo 단자가 달린 전기차를 열심히 팔았고, 또 이 규격으로 된 전기차 충전기를 열심히 설치했다.

 

여기까지는 매우 정상적으로 진행된 것 처럼 보였다.


문제는 미국에서 발생했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CCS1 combo 라는 미국식 충전 표준을 만들었고, 테슬라에게도 이 규격을 따르라고 압박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테슬라는 자신들의 독자 규격인 '슈퍼 차저'를 밀어 부쳤다. 테슬라 자동차에는 여전히 '슈퍼 차저'용 충전 단자가 달린 채 팔리고 있었고, 테슬라는 더 많은 슈퍼 차저 충전기를 설치했다. 

미국 전기차 시장은 테슬라 혼자 50% 를 넘게 점유했고, 이는 다시 말해 다른 전기차 회사의 점유률을 다 합친거 보다 높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다른 업체가 힘을 합쳐 테슬라를 압박해도 테슬라는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독자 노선을 달려 나갔다. 오히려 테슬라는 슈퍼 차저 규격을 공개하며, 다른 자동차 업체들이 슈퍼 차저를 사용하라고 역으로 압박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https://www.electrive.com/2023/12/20/tesla-nacs-is-now-the-official-charging-standard-in-north-america/

 

Tesla NACS to become an official charging standard in North America - electrive.com

The harmonisation organisation SAE International published a corresponding document which will turn the de-facto standard into a harmonised connector

www.electrive.com

 

실제로 자신들의 규격을 주장하던 테슬라는 결국 2023년 12월에 SAE 에서는 테슬라의 충전 규격(NACS, The North American Charging Standard)이 확정시켰고, SAE J3400 란 이름으로 표준화에 성공했다. 또한, 미국 연방 정부에서도 NACS 를 공식적으로 전기차 충전 표준 중에 하나로 인증했다. 테슬라의 충전 규격이 이제는 독자 규격이 아니라, 미국의 공인된 정식 표준이 된 것이다.

 

https://www.techtube.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37

 

포드이어 GM도 테슬라 충전 규격 지원 - 테크튜브

미국 자동차 업계에서 테슬라의 전기자동차 충전 규격을 지원하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제너럴 모터스(GM)는 8일 자사 전기자동차를 테슬라의 급속 충전기인 ‘테슬라 슈퍼차저’로 충전할

www.techtube.co.kr

 

실제로 포드, GM 등은 저런 결정이 나오기 이전 부터 테슬라와 협업하여 슈퍼 차저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기존 차량은 슈퍼차저용 변환 어댑터를 제공하고, 신규 차량은 아예 슈퍼 차저용 충전단자를 장착하기로 한 것이다.

 

테슬라의 NACS 는 미국 전기차용의 여러 복수 표준 중에 하나이지만, 사실상 단일 표준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은 매우 곤란한 상황에 봉착했다.

 

CCS1 combo 는 사실상 미국과 한국에서만 사용한다. 미국과 인접한 캐나다에서도 채택했지만, 캐나다는 시장도 작고 추운 날씨를 고려하면 전기차 시장은 더욱더 작다. 대만과 중남미의 일부 국가에서도 채택했지만, 역시 시장이 작다.

 

이제 사실상 CCS1 combo 를 사실상 한국에서만 사용하게 된 것과 다를 바 없다.

 

여튼 이렇게 진행되자, 현대/기아차 입장에서 매우 곤란하게 되었다. 여태까지는 미국에 수출할 때 당연히 미국 표준인 CCS1 combo 를 장착하고 수출했지만, 계속 이를 고집할 수는 없게 되었다.

 

https://www.elec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348274

 

현대차, 북미서 NACS 충전 포트 채택하고 어댑터 무료 제공…"원활한 전기차 전환 목표" - 전기신

현대자동차가 북미에서 전기차 충전 포트를 NACS로 통일한다. 기존 차주들에도 충전 어댑터를 무료로 제공한다.현대자동차는 글로벌 홈페이지를 통해 2025년형 아이오닉5를 NACS 포트로 변경한다

www.electimes.com

 

결국 현대자동차 역시 기존 차주들에게는 변환 어댑터를 제공하고, 새로운 차량에 대해서는 NACS 단자를 장착하여 수출하기로 결정했다. 현기차는 2025년식 아이오닉 5에 최초로 NACS 단자를 장착하여 미국에 수출했다.

 

문제는 한국 시장이다.

 

현대자동차 역시 한국에서도 NACS 를 채택하기를 바라고 있고, NACS 를 장착해서 출시하고 싶은 마음일꺼라 생각된다. 과도기적으로 CCS1 combo 와 NACS 를 둘다 채택한 자동차를 만들어 팔 수도 있을 거고, 그냥 테슬라나 신형 아이오닉 5(미국 수출형)처럼 NACS 만 탑재하고, 필요하다면 구매자에게 컨버터를 하나 덤으로 주거나(또는 팔거나) 하는 방식으로 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판매를 위한 모델은 아니지만) 실제로 메르세데스 벤츠의 CLA EV 2025년형은 NACS 단자와 Type1 단자를 둘 다 달고 출시될 예정이다. 표준이 바뀌는 과정에서는 이런 과도기적 모델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충전기 인프라이다. 2024년 10월 기준으로 대한민국에는 AC 완속 충전기가 약 35만기, DC 급속 충전기는 4만기가 설치되어 있다. 당연히 초창기 설치된 일부 충전기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은 완속은 Type1, 급속은 CCS1 combo 규격이다.

 

그나마 DC 급속 충전기 시장은 그 규모상 주로 대기업에서 운영하고 있다. 현대의 E-pit, 롯데의 EVSIS, SK의 SK시그넷 등이 있으며, LG, 한화 같은 다른 대기업도 충전 시장에 뛰어 들고 있다. 이런 대기업들은 자본력이 있으니, NACS 로 바꾸겠다고 결정된다면 그렇게 할 여력이 얼마든지 있다. 실제로, 이런 기업들은 미국 충전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모색중이기에, NACS 와 CCS1 combo 를 동시 지원하는 충전기를 이미 확보하고 있고,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공급도 가능할 것이다.

 

 

반면, AC 완속 충전기 시장은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가 따로 없다. GS차지비 처럼 그나마 대기업 계열사도 있긴 하지만, 수십개의 회사가 난립중이며 그들 대부분은 중소기업들이다. 그리고 많은 수의 회사들이 안정적인 자금력을 확보한 게 아니라, '정부의 보조금'을 받으며 생존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NACS 로 충전기를 다시 개발하고, 또 이를 새로 설치하려면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들 업체들에게 NACS 를 채택하게 하려면,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을 다시 풀어야만 가능할꺼라 생각한다.

 

대한민국 환경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 충전기를 120만대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상 한국에서만 사용 중인 Type1 (또는 CCS1 combo) 를 계속 사용해야 할지, 아니면 지금이라도 빨리 NACS 로 바꿔야 할지 매우 고민해야 할 상황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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